'김활란 상' 제정 무엇이 문제인가?

묻어둘 수 없는 김활란의 행적

고은광순(사회학 73)

지난 10월 이화여대는 '한국현대사에 불멸의 자취를 남긴 김활란 박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사회 발전과 인류의 번영 및 평화증진에 기여한 여성을 기리고자' 김활란상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를 비롯 시민단체에서는 김활란의 친일행적을 비판하며 상의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도대체 김활란은 일제시대 때 어떤 행적을 보였기에 많은 이들이 상의 제정을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이민동에도 '김활란 상'제정과 관련하여 활발한 논의가 모아졌으면 하는 바램에서 김활란이 어떤 인물인지 그의 일제시대 행적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

김활란은 미국유학을 갔다온 1930연대 중반 이후부터 일제의 '황국 신민화 운동'에 앞장선다. '황민화 운동' '내선일체운동' '대동아 공영 성전 지원운동' 등의 이름으로 이뤄진 각종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을다니며 아래와 같은 글을 쓰고 강연을 하였다. (김활란과 함께 '이화의 3인방'이라 불리는 박마리아 ,모윤숙도 강연자 명단에 함께 들어 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귀한 아들을 즐겁게 전장으로 내보내는 내지(일본)의 어머니들을 부러워하며 칭찬도 했다. .... 그러나 이제는 반도여성 자신들도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이나 남편등을 전장으로 보내야 ... 우리도 국민으로서 최대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을 생각하면 얼나나 황송하고 감격스러운지...."(1042.12)

    "학도병 출진의 북은 울렸다. ... 가라. 마음놓고 뒷일의 총후는 우리 부녀가 지킬 것이다. 남아로 태어나 오늘같이 생의 참뜻을 느꼈음도 없었으리라. 몸으로 국가에 순하느 거룩한 사명..."(1943.12)

    "우리는 배속으로부터 '대화혼의 소유자가 되어야... 존업하옵신 황실을 받들어 모시고 생사를 초월하여 대군을 위하여 순국봉사하는..."(1947.8.7)

    이와같은 김활란등의 친일행각은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진다. 1936년 6월 육군 대장 미나미가 조선총독에 임명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은 모습도 마음도 피도 살도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내선일체를 부르짓고 갖가지 민족말살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위 글에서 보이듯 김활란 등은 진정 '모습도 마음도 피도 살도' 일본과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 듯 하다. 누가 이들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강압에 의해 민족의 아픔을 스스로 감당했다". "그들의 과오는 공보다 지극히 적다"고 하는가?

게다가 김활란등의 친일세력은 한국이 해방을 맞았을 때 또한번 재빠른 변신을 한다. 미군정이 들어서고 그들이 미는 이승만 정부가 단독정부를 세우자 이승만의 편에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며 정부의 요직에 앉았다. 모윤숙 등은 '모일류 여자대학교를 졸업한 교육받은 매력적인 여성들로 국한된 '자유당의 접대부' 낙랑클럽을 조직하여 외국귀빈, 한국정부 고위관리 및 군장성, 주한외교사절 등을 접대하였다. (중앙일보 95년 1월 18일 미방첩대 보고서 인용기사)

이대 총장시절 1950년에는 김구를 살해한 안두희가 1년만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나자 당시 피난차 부산에 있던 그녀의 서재로 불러 미리와 있던 신성모 국방장관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안두희에게 '격려금'을 주는 광경을 지켜보기도 한다. (93년 국회제출 안두희 육성고백 녹취록)

일제시대부터의 오랜동지(?)였던 이대부총장 박마리아(이승만의 양아들 이기붕의 아내 4.19때 동반자살 함 -> 이승만의 양아들 이강석의 어머니-옮긴이)을 잃는 슬픔도 있었으나 5.16 쿠데타 직후인 5월 18일 미국으로 건너가 박정희를 위한 외교를 펼치기도 하였다. 이후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에는 대한민국포상, 대한민국순회대사 한국아시아 반공동맹 이사등 정치 외교활동을 하다가 1970년 사망하였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들은 미래도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외세의 힘을 빌어 광복을 맞은 후 분단, 전쟁, 군사독재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의 장을 전국민적 차원에서 차분히 열어보지 못한 것은 친일행각을 한 이들에겐 '행운'이었겠으나 한국민에게 그것은 대단한 불행이다.

프랑스는 2차대전이후 나찌전범 협력자로 200만을 가려내여 그 중 20만을 형사 처벌하였으며 3만5천명을 사형시키고 9만명의 공민권을 박탈하였다. 히틀러, 무솔리니와 손잡은 일제의 침략전쟁은 세계사 속에 '인류에 대한 적대적행위'로 기록된다. 과연 '세계적 여성지도자'들이 민중을 호도하고 파쇼에 협력한 김활란을 기리는 상을 받고 싶어할까?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라 하며 김활란의 친일행각을 비호하지만 그것은 바로 '어쩔 수 없는 시기에도 침묵해서는 안되는 지식인의 역할을 방기한채 강자의 지배논리에 길들여진' 나약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을 옹호하는 일이 될뿐이다. 우리의 교육이 강조해야할 일은 '비굴하게 살아남기'가 아니라 억압에 저항하여 옳게 살아남기 위한 힘 기르기여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김활란 상의 제정시도는 마땅히 중지되어야 한다. 상의 이름을 달리한다고 ' 세계의 이화' 발돋움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이화 98년 겨울호 민주이화토픽)

Posted by 에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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