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 김활란 상' 왜 문제인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상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중략)...그러나 반도여성에게 애국적 정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중략)...우리에게 얼마나 그 각오와 준비가 있는 것인가!...(중략)...우리는 내지여성(일본여성)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중략)...즉 국가를 위해서 즐겁게 생명을 바친다는 정신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내 남편도, 내 아들도 물론 국가에 속한 것이다. 최후의 내 생명까지 국가에 속한 것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이 글은 대표적인 친일여성지도자 김활란이 [신시대]1942년 12월호에 기고한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논문의 일부이다. 천성활란(天城活蘭, 야마기 가쯔란)으로 창씨개명을 한 후,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가지 각종 어용조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각종 강연의 연사로 나선 김활란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징병제에 참여하라고 독려한 대목이다.

이화여대는 1999년 고 김활란 박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월 김활란 상'을 제정하여 국제적으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전문여성에게 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이화여대가 한국의 여성교육을 이끌어왔으며, 그에 걸맞게 21세기를 맞이한 세계적인 여성지도자를 위한 상을 제정한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하필이면 김활란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김활란은 이 시대 한국여성운동을 대변하는 진정한 사표(師表)인가? 우리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월 김활란상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친일여성지도자 김활란,징병제를 독려하여 수많은 학생들을 일제의 침략전쟁에 내보냈던 김활란, 일제시대에는 친일, 해방 후에는 친미로 권력의 핵심부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김활란, 그를 한국 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여성지도자로, 여성운동가로 기리는 것은 타당한가?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처참한 인권유린을 당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이 살아 증언하고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현수막 한 자락에 그들의 한을 담고 서 있은 지 벌써 7년이다. 수요시위의 역사가 오래되면 될수록 일제 만행의 역사는 세계 널리널리 알려질 것이다. 아직도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정부가 있는 한, 일제의 손발의 역할을 담당한 친일적인 여성지도자 김활란상을 제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화여대는 이 시점에서 무엇이 진정 올바른 여성지도자상인지를 제고해야 한다. 친일과 친미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노력하는 각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 것이다. 오욕의 세월에 편승하여 기득권을 누리고자 했던 여성지도자가 아닌, 한국 민족운동과 여성운동의 진정한 비전을 제시한 여성지도자를 발굴해야만 한다.

진정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여성지도자는 민족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밑바닥여성들의 삶을 함께 나누는 여성지도자이다. 이화여대는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여성지도자를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자체가 변화되어야 한다. 더 이상 세계적으로 유명하거나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사람이 아닌, 민족과 계급을 초월하여 민중여성들과 함께 하는 여성지도자만이 폭력과 가부장문화로 얼룩진 20세기를 마감하며 새로운 21세기를 열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할 것이다.

1998.11.9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Posted by 에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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