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심판 -대구 박중양 기념비'일소대' 철거 |
경기도 양주 출생인 박중양은 1897년 일본으로 유학을 하면서 쌓은 일본 정계인사와 유창한 일본어를 바탕으로 친일관료로 길을 걷게 된다. 3.1만세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날 때 자제단(自制團)의 단장이 되어 "경거망동으로 인하여 국민의 품위를 손상케 하는 일이 없도록 . . . "이라고 외치고, "누구라도 이완용과 동일한 경우의 처지가 된다면 이완용 이상의 선처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이완용 등은 매국노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북관찰사,충청남도 도장관, 중추원참의, 황해도 지사, 충북지사,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임전보국단' 고문, '총력연맹' 참여, 각종 학병권유 연설, 3.1운동 당시 '자제단' 결성등 박중양은 일본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철저한 일인 관료가 되어 이등박문의 양자라는 말이 나돌정도였다. 해방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변명으로 일관한 박중양의 흔적이 아직도 대구 중심에 남아있다. 침산동 침산공원, 박중양 스스로 1943년에 자신의 기개를 알리기 위해 '일소대'(日笑臺)라는 글을 새긴 타원형의 큰돌을 4단 기단 위에 세운 기념비가 있었다. 1996년 10월 11일 박중양의 후손이 철거하기 전까지 '일소대'를 향해 치성을 드리는 노인이 있을 정도로 박중양은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회(회장 여환권)을 중심으로 '일소대 철거 위원회'를 결성하여 철거계획을 세우고, 1996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여 박중양의 친일 행위를 고발하는 안내문을 세웠다. 그 후 '박중양'의 실체를 알게된 시민들의 여론이 나빠지자 후손들에 의해 자진 철거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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